“딱 4판만 가르쳐주겠다~”27살 한국의 젊은 청년은 일본 바둑계 전설이 한 말에 역전승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백과 흑 이 두가지를 가지고 표현되는 것이 많지만, 바둑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없습니다. 바둑은 동양에서 유행하는 놀이 중의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AI시대에도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대두되던 초기에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일전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예전 바둑 세계에서 일본이 주름잡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부산이 고향인 꼬마가 바둑에서 어릴적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그 당시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11살되는 해에 바둑계 역사상 일본에서는 최연소로 일본기원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많은 스포터라이트를 받으며 성장하여 청년이고 20대의 젋은 나이에 모든 일본 바둑기사들을 꺽고 평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바둑 기전 그랜드슬램 최초 달성하였습니다. 1574승이라는 사상 최다 승리도 거머지었습니다. 지금도 일본 바둑계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레전드로 불리는 사람, 바로 조치훈 9단입니다. 간략히 조치훈 9단을 소개하면 국적은 한국으로 귀화권유를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귀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본 활동으로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고 활동하는 대나무와 같은 강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치훈 9단으로 불려지기를 고집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조치훈 9단의 기개와 기치를 보여주면서 절대 지지 않은 면모를 극렬하게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여러 기전들이 있지만 그 중에 기성전이라는 바둑 기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기전으로 상금도 제일 큽니다. 그래서 웬만한 기사들은 모두 출전을 해서 자기의 실력을 뽐내고 우승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우승 경쟁이 치열하여 우승하기가 힘든 기전입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적 부흥기를 준비하고, 스포츠를 프로화하여 가는 초창기 시절이지만
일본에서 조치훈 9단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시기도 1983년경부터 였습니다. 일본 바두계의 원조 전설이라는 후지사와 슈코9단은 조9단의 소문을 듣고 기성전 출전사를 이렇게 남겼습니다.
“흠… 조치훈 군이 그렇게 센가? 내가 한 번 찾아가 봐야겠군”

지금은 이를 트레쉬토크라고 하지만 그 때는 일방적인 선포의 의미였습니다. 속내는 조치훈9단이 가지고 갈 우승 타이틀을 내가 가지고 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6년 연속 우승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원로가 이같이 도발을 하였지만 이를 들은 27살 청년 조치훈9단은 이렇게 재치있게 받아 넘겼습니다.

“대선배님을 어떻게 찾아오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즉 올해 우승은 제가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기지있게 답변하였습니다.

그러자 기성전 전야제에서 후지사와는 “딱 네 판만 가르쳐주겠다(4:0으로 이겨주겠다)”고 다시 도발하였습니다. 침착하게 조치훈9단은 “딱 세 판만 배우겠습니다” 이 말은즉슨 3판은 체면상 져주고 4판 이겨서 우승하겠다라는 뜻으로 기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바둑 언론은 젊은 한국 청년 바둑기사의 건방지고 자만이 넘치는 발언에 놀라며 이를 가쉽거리로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팽팽한 기싸움으로 시작된 결승 대국7전을 후지사와가 먼저 3연승하였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역시 전설이다. 구관이 명관이다 등으로 우승을 자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나머지 네 판을 내리 조치훈9단이 다 이기고 4:3으로 역전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일어나면서 일본 바둑 역사상 길이 남을 명경기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승 소감을 말하는 조치훈 9단은 나즈막하지만 강한 울림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후지사와 선배님의 기성 타이틀이 이번으로 마지막일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후 조치훈9단이 3년 연속 우승하면서 후지사와 슈코 기사는 정말로 이후 죽을 때까지 기성전 타이틀을 따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입니다.

한 번은 대회 전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와 왼쪽 팔이 다 부러지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누가봐도 너무 큰 부상이어서 조치훈9단이 이 대회에 그대로 참여한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나에겐 아직 머리와 오른팔이 있다”며 조치훈은 휠체어를 타고 대국에 임했습니다. 이 경기 또한 일본 바둑계에서 ‘휠체어 대국’이라 불리며 전설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본 바둑 역사에서 조치훈을 넘어선 기사는 기성전 9년 연속 우승하며 2010년부터 2020년대 일본 바둑계의 최강자인 이야마 유타 한 명뿐입니다. 그런 이야마 유타 기사가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다름 아닌 조치훈 9단입니다.

이런 조치훈9단의 좌우명은 “목숨을 걸고 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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